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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경의선은 중국의 단둥(안동)에서 봉천까지 가는 단봉철도와 연결되어 바로 만주로 갈 수 있는 통로 구실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연운항에서 출발하는 중국횡단철도와 단동에서 출발해 울란바토르를 거쳐 가는 몽골횡단철도는 모두 파리까지 가는 시베리아횡단 철도와 연결되아 있다. 백석이 공부하던 오산학교 남쪽으로는 133미터의 남산, 남서쪽에는 그 비슷한 천주산, 서쪽에는 245미터의 제석산, 동쪽에는 205미터의 연향산이 있다. 오산이란 이 다섯 봉우리의 산이 하나의 분지를 형성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1937년 8월이 되어서야 윤동주는 도서관에서 『사슴』을 겨우 빌릴 수 있었다. 시집을 빌리자마자 그는 그 자리에서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최대한 정성을 들여 시집 속에 실린 시를 공책에 베껴 썼다. 그리고는 필사본 시집을 읽으며 자신의 소감을 공책 모퉁이에 적어두기도 하였다. 윤동주는 이후 『사슴』을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였다. 일본 유학 때는 아우 윤일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슴』을 꼭 읽어버라고 권하면서 백석의 시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끼던 책을 신경림은 1961년에 잃어버렸다. 가택수색을 당하면서 빼앗긴 책 50여 권 중에 『사슴』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신경림은 "지금도 서슴없이 내 시의 스승으로 먼저 백석 시인을 댄다"라고 고백하면서 그가 쓰는 시의 젖줄이 백석에게 닿아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밝힌 적이 있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시 1965년에 안둥은 지금의 단둥으로 바뀌었다. 봉건시대 중국 왕조가 화이사상에 기초하여 동쪽의 오랑캐를 안정시킨다 는 의미로 쓴 안동 이라는 지명을 버리고 단둥으로 바꾼 것이다. 이로써 서기 668년 당나라가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위에 안동도호부를 두면서 생간 이 명칭이 사라졌다. 소래섭은 『백석의 맛』(프로네시스, 2009)이라는 책에서 음식이 단순히 허기를 채워주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에만 그 의미를 국한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저술가 피셔의 글을 인용하면서 음식에는 인간의 주체를 구성한는 육체 , 욕망 , 영혼 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인간의 안 은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욕망과 영혼 또한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밖 또한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신체를 통해 흡수되는 것이 물질이라면, 욕망을 통해 흡수되는 것은 어떤 욕망이나 정서이고, 영혼을 통해서는 그 음식이 지닌 영혼이나 정신이 흡수된다. 음식을 통해 나 라는 주체를 이루는 모든 것과 외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만주에는 각양각색의 조선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땅 투기꾼·밀정·친일관료·시인·기생·돈 떼먹고 온 사기꾼·도박꾼·가족 없는 홀아비·고리대금업자·노무자·독립군 연락책·소설가·기자·공산주의자·야반도주한 연인들·청소원·교사·상인·밀수꾼·식당 종업원·매음녀·의사·‥…이런 군상들이 뒤섞여 이른바 선계 를 이루고 있었다. 백석이 신징의 조선인 사회에 크게 실망한 것은 반성과 속죄의 심정도 없이 나날의 생활을 영위해가는 조선인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조용히 사유할 줄 모르고 말만 앞세우며 실천할 줄 모르는 이들이었다. 1940년 8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폐간되었다. 한편 1940년 2월부터 창씨개명령이 시행되었음에도 조선인들의 참가가 미약하자, 일제는 6월부터 행정과 경찰력을 총동원해 성시를 일본식으로 바꿀 것을 종용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조선인들을 비국민 으로 부려며 불령성인 으로 분류해 각종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25일 소련군은 남북 간의 철도 운행을 중지시켰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끊기고 남북을 연결하던 통신선도 끊었다.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9월 19일, 김일성은 조선인 항일유격대 대원들을 이끌고 원산항을 통해 귀국했다. 소련군 육군 대위의 군복을 입고 김일성이 평양에 도착한 것은 22일이었다. 미국에 있던 이승만과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10월 16일과 11월 23일에 각각 귀국한 것과 비교해보면 발 빠른 행보였다. 1946년 5월에 미군정청 외부처에서는 38선 이북에 여행을 금지한다고 발표하였다. 경의선을 이용하는 승객은 5월 10일부터 문산까지만 갈 수 있게 되었다. 38선을 사이에 놓고 비교적 자유롭게 남과 북을 드나드는 일이 이때부터 난관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남쪽에서는 미군이 우익 정권을 세우는 일에,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좌익 정권을 세우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분단은 38도선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문인들도 좌와 우로 재편되었다.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1946년에서 1947년 사이에 대거 월북했다. 이렇게 월북한 작가들과 함께 1946년 북조선예술총연맹이 결성되었다. 위원장은 한설야, 부위원장은 월북한 이태준이 맡았고, 그 산하에 장르별 연맹을 두었다. 그 당시 이북에서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정리해서 월남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김일성과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지주나 자본가들,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 우익 노선을 견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일제 말에 친일을 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서울에서는 친일을 용인해준다는 소문이 그들로 하여금 짐을 싸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 불투명한 시기였기 때문에 서울로 간다고 해도 무슨 뽀족한 대책이 잇는 것도 아니었다. 평양에서 밀려나 현지 파견을 간 작가들은 대부분 평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소설가 박태원은 1956년 평안남도 강서지방 협동농장으로 추방되어 갔다가 1961년 평양으로 복귀하였다. 1984년에 완성된 『갑오농민전쟁』은 지금까지도 공화국 최고의 력사소설 로 평가받고 있으며, 백태원은 198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창작을 계속했다. 분단 후 월북 작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30년간 백석을 짝사랑해온 시인 안도현이 완성한
우리시대 최고의 평전!

백석의 첫 시집 사슴 은 1936년 1월 20일,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선을 보였다. 백석은 한 권의 시집을 실로 한 개의 포탄을 던지는 것처럼 새해 첫머리에 시단에 내던졌다. (김기림) 백석의 시집을 구하지 못한 윤동주는 도서관에서 사슴 을 겨우 빌릴 수 있었다. 시집을 빌리자마자 그는 그 자리에서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백석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신경림은 내가 시를 좋아하게 된 것도 실은 백석 시인으로 인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고 밝힌 바 있다.( 백석 평전 본문 140쪽)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으며, 해방 이후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 백석 평전 이 출간됐다.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백석의 시가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 였으며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 고 고백하는 안도현 시인은 그동안 백석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며 백석의 생애를 복원했다.

‘평전’이라는 형식으로 백석의 생애를 복원해 본다면 이것 역시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온 시간을 재구성하는 일도 결국은 그를 베끼는 일이었다. 그동안 시를 쓰면서 백석의 어투, 시어는 물론 시를 전개하고 마무리 짓는 방식과 세계에 반응하는 시인으로서의 태도까지 닮아보려고 나는 전전긍긍했다._‘서문’에서


귀향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오산학교 시절
소월과 백석
아오야마 학원으로 유학을 가다
일본에서의 문학수업
〈조선일보〉와의 인연
광화문의 3인방
실비 내리는 어느 날
시인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100부 한정판 시집 사슴
사슴 은 문단에 던진 포탄
통영, 통영
진주에서 노래하고 술 마신 밤
함흥으로 떠나다
사슴 을 보는 또 다른 눈
백석 시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
함흥에서 만난 자야
친구 신현중의 놀라운 배신
중일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최정희와 노천명과 모윤숙, 그리고 사슴
삐걱거리는 함흥 시절
뛰어난 여성 지 편집자
화가 정현웅
나는 만주로 떠나련다
북방에서
권태와 환멸
측량도 문서도 싫증이 나고
흰 바람벽이 있어
압록강이 가까운 안둥 세관에서
시의 잠적
해방된 평양에서
38선을 넘지 않은 이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전쟁과 번역
동화시의 발견
공격적인 아동문학 평론
학령 전 아동문학 논쟁에 휘말리다
살아남기 위하여
붉은 편지를 받들고 관평의 양을 키우다
평양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삼지연 스키장 취재기
남으로 보내는 편지
그리하여 사라진 이름
시인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