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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유산기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일이 복잡하게 얽혀서 주말여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주말에 야트막한 산에라도 들라치면 심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얻곤 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과도 공유하기도 그 느낌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우연히 읽게 된 <국역 유산기-경상북도편; >을 읽고는 많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국역 유산기>는 국립수목원이 ‘산림정책과 산림문화 역사성 규명을 위하여’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남긴 글들을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경상북도 편에 이어 경기도 편이 나왔습니다. 경기도편에서는 모두 20편의 유산기를 담았는데, 11분의 글을 모셨고, 이익과 허목이 각각 4편으로 가정 많은 유산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삼각산과 수락산과 같이 유명한 산의 경우에는 유산기를 남긴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가까운 탓에 익숙한 산 이름이 많아 친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산을 어떻게 느꼈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익 같은 경우는 지명이나 동행한 사람들, 그때의 행적 중심으로 소략하게 정리하고 있어 건조하면서도 공식적인 문서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허목 같은 이는 문헌을 인용하여 전해오는 고사를 정리하기도 하고, 조찬한 같은 이는 산에 올라 얻은 느낌을 유려하게 적고 있기도 합니다. 한 구절을 인용해봅니다. “암자에 동대가 있는데 대의 광활함과 빼어남은 더욱 최고이니, 대에 올라 조망하는 유쾌함이 신선이 되어 나는 것보다 상쾌하다. 사방에 펼쳐진 천만 봉우리와 골짜기가 구름 같기도 하고 노을 같기도 하며 비단 같기도 하고 틀어 올린 상투 같기도 하며, 사람이 공수를 하는 듯한 것, 새가 발톱을 세운 듯한 것 금수가 움직이고 멈추는 듯한 것, 호표가 엎드리고 어룜이 서 있는 듯한 것들이 한 번 눈을 깜빡일 사이에 기묘함을 다투니, 황홀하고 어리둥절하여 혼백이 날아가 광대함을 가리킬 수 없었다.(94쪽)”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산세가 험한 곳을 올라가는 장면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내기도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가파른 길을 갔다. 비틀거리고 주춤대면서 가니 숨이 막히고 눈이 어지러운 것이 화장사의 바위고개를 넘을 때보다 심하다. 반도 못 올라가서 떨리고 근심스러워져서, 나아가야할지 물러나야 할지 몰라 오랫동안 있었다. 그러다가 용감하게 위로 매달려서, 돌부리를 손톱으로 움켜쥐고 벼랑을 무릎으로 기어갔다.(96쪽)” 그때 만해도 아웃도어 복장이 있었던 것이 아닐 터이니 의관을 정제하신 선비께서 차마 옮기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터이니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가 알기로도 만만치 않은 삼각산에 오르면서 내리 술추렴을 하신 이정구 같은 이도 있습니다. 산천경계를 보고 즐기는 것보다는 동행하는 악공의 연주를 들어가면서 술을 마시는 일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산을 아시는 분들은 산에 들어서 나올 때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고는 순간적인 것이고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어지고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간혹 고증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허목이 성거산과 천마산의 고사를 정리하는 부분에서 “옛 구역의 땅은 신라가 불교를 숭상했던 때부터 고려를 거친 1500년 동안 깊은 산과 외진 땅으로 인적이 통하지 않는 곳에는 불교의 옛 자취가 또한 많은데,(109쪽)”라고 적었습니다.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5세기이고, 허목은 1595년에 태어나 1682년에 사망하였으니 연대를 잘못 계산한 점이 있어 보입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을 보면, 372년 전진의 승려 순도가 불경과 불상을 고구려로 가지고 오자 소수림왕이 이를 받아들이고 공인하였으며, 백제는 384년 침류왕 때 동진에서 온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를 통하여 받아들였다. 신라의 경우는 5세기 들어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온 묵호자가 불법을 전해 민간에서는 불교가 전파되고 있었지만, 528년 법흥왕에 이르러서야 이차돈의 순교가 계기가 되어 공인되었던 것입니다. 글을 쓸 때 자료의 검증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산에서 우리 선조들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1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_이정구(李廷龜)
2 유서산기(遊西山記) _김상헌(金?憲)
3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_이익(李瀷)
4 유북한기(遊北漢記) _이익(李瀷)
5 유도봉기(遊道峯企) _홍직필(洪直弼)
6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 _이익(李瀷)
7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 _채제공(蔡濟恭)
8 유수락산기(遊水落山記) _이희조(李喜朝)
9 기유(記遊) _김이안(金履安)
10 유수락소기(遊水落小記) _ 오희상(吳熙常)
11 유수락산기(遊水落山記) _홍직필(洪直弼)
12 유천마성거양산기(遊天磨聖居兩山記) _조찬한(趙纘韓
13 유천마산기(遊天磨山記) _이익(李瀷)
14 성거천마고사(聖居天摩古事) _허목(許穆)
15 감악산(紺嶽山) _허목(許穆)
16 백운산(白雲山) _허목(許穆)
17 산중일기(山中日記) _김수증(金壽增)
18 미지산기(彌智山記) _허목(許穆)
19 덕수유산기(德水遊山記) _김안로(金安老)
20 등연적봉기(登硯適峰記) _채제공(蔡濟恭)